이제 우리 여자들도 실수하면서 배울 수 있게 좀 놔둬라! <잠깐 수습 좀 하고 올게요>
- 리싸이월드: 시오랑의 아카이브(연재 종료)
- 2021. 5. 27. 09:29
모든 존재는 실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익혀가기 나름입니다. 누구라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기는 발을 떼고 제대로 걸을 때까지 약 3천 번 넘어져야 비로소 걸음마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대략 3천 번의 실수를 통해 드디어 성공에 이르는 것이지요. 성장에 있어서 실행과 시행착오, 실패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최고경영자는 평균 2.8회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글로벌 창업시장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은 정설로 통하는데, 실패를 용인해주는 문화에는 창업해서 결국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통해 성숙해진 창업자들에게는 투자자들이 또 투자를 해주고요.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수많은 IT 대기업과 셀 수 없는 다양한 스타트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모습이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과 같이 “정상궤도”에서 한 번 미끄러지면 가속도가 붙어 바닥으로 치닫게 되는, 경직되고 획일화된 사회구조에서 실수는 사치이자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여기에 젠더화가 추가될 경우, 한때 유행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남성의 실패가 그냥 커피라면 여성의 실패는 (흑화 버전의) TOP” 정도 되겠습니다(으으 옛날새럼...). 남성은 개별화된 일반 시민으로서 실패를 통한 성장이 허용되지만, 여성은 객체가 아니라 (망상 속) 표준화 가공과정을 거친 단일 개념으로 인식되는 나머지 다양성 자체를 거세당해 항상 여성 전체를 대표하는 버거움에 시달립니다. 내가 실수하면 '그래서 여자는 안 돼‘라는 반응이 나오거든요. 난 여자를 대표하겠다고 어딘가에 출마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여성을 남성과 다르지 않은, 자신과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다는 너무나도 투명한 사고방식인 것이지요.
세상이 남성의 실패보다 여성의 실패에 더 가혹한 것을 수없이 보고 느끼며 자라온 여성들은 이것저것 해보면서 해결책을 도출하는 대신,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실현하기 힘든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평소 이를 안타깝게 느낀 저자는 미국에서 각 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 25명이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위해 최악의 시행착오들을 인터뷰하여 <잠깐 수습 좀 하고 올게요: 나를 잃지 않는 실수 회복법>을 펴냈습니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성공한 여성 당사자들을 통해 확인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희열이고 해방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그나저나 여성에게 완벽성을 기대하는 현상은 문화권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것은 참 씁쓸한 현실이네요).
“‘실수를 통해 배우라’는 당위적인 말에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착한 여자 콤플렉스’도 보인다. 2006년 걸스 잉크[여성들에게 ‘강력하고 똑똑하고 대담하게’ 나아갈 것을 장려하는 미국 비영리단체-옮긴이]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은 초등생 시절부터 ‘완벽하고 센스 있고 날씬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또 여성들을 익숙한 영역에 머물게 만들어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 2007년에 심리학자 캐럴 드웩의 연구팀은 똑똑한 여학생들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혼란에 잘 대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로 “여학생은 아이큐가 높을수록 더 대응을 못했다.” 여학생은 대체로 남학생보다 도전을 힘들어했다. 이 여학생들이 받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압박은 흔히 대학 졸업 이후까지 이어진다...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원을 다닐 때까지도 일을 ‘똑바로’ 하는 방법에 대해 별 도움도 안 되는 온갖 메시지들을 흡수한다.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막연한 조언은 그런 메시지들 속에 파묻혀버린다.“
실수를 주제로 한 멘토링 프로그램과 강연이 인터뷰 프로젝트로 확장된 결과물인 이 책은, 여성의 실수 또한 성장의 필수 요소임을 확실히 알려주는 구체적 사례입니다. ‘실수’는 잘못 또는 잘못을 저지른 행위를, ‘실패’는 의도했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거나 기대를 저버려서 예상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닌 실패가 되는 것이죠. 실수가 실패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자가 처했던 최악의 상황과 함께 풀어낸 내용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입니다.
실수를 하면 행동과 자신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그 행동은 실수지만 우리 자신의 실수는 아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더 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뢰하는 사람과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하면,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서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 사람이 수치심에 빠지지 않으면서 실수를 인정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특히, 겸손과 친절을 가장 상위의 가치로 여기도록 성장한 대부분의 여성은 경쟁과 셀프 마케팅이 숨 쉬듯이 매끄럽게 펼쳐지는 직장생활 초반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연봉협상이나 연봉협상, 그리고 연봉협상과 같은 경우에요. 사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공익실현도 세계평화도 아닌 먹고사니즘 때문이잖아요? 회사에서 스펙을 쌓고 경험치를 높이는 근본적인 이유인데도 불구하고 마음 편하게 협상(이라 쓰고 통보라 읽긴 하지만)에 임하기 힘든 여성들을 위해 우리 선배들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금액을 말하기 힘들어한다는 것, 그리고 일이 잘못되어도 최악의 결과는 거절당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 수 있다. 극적인 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여자들은 “제 가치는 그보다 높다고 생각하는데요?”라거나 “금액을 올려주실 수 있나요?”라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오만하다는 인상을 줄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또 돈을 더 받으면 모든 걸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걱정한다. 내 친구인 뛰어난 저널리스트 한 명은 보수가 인상되면 “야호, 당연히 그만큼은 받아야지” 하기는커녕 속이 뒤틀린다고 한다. 자신에게 그만한 돈을 받을 가치가 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성별 임금 격차도 줄여나갈 수 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인터뷰이 중 작가 코트니 E.마틴은 온라인 커뮤니티 [페미니스팅]에 ‘불구자’라는 비하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보이콧 캠페인이라는 참사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는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한 번의 난관과 마주하는데요.
내가 말했다. “저는 장애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요. 추천해주실 책이나 영화 같은 것이 있나요?”
그러자 누군가 대답했다. “오만한 질문의 전형이군요. 당신을 교육하는 일, 목록을 뽑아주는 게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상황 전개가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나요? 주기적으로 페미니스트를 괴롭히곤 하는 특정성별의 시혜적 제스처와 많이 닮았습니다. 무지가 죄는 아니지만 권리인 것도 아니고, 무지에 머물러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특권 계층에 스스로가 속해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해야 함을 또 한 번 느끼게 해준 일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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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쯤 되면 특정성별도 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여성들만 매일 반성하고 자기 검열하느라 상대적으로 뒤쳐져야 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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